[독자기고] 금산이 살아갈 길

작성일 : 2024-05-09 16:13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서울에서 유턴해 금산에 소아과 의원을 개설한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물리적 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도 금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되던 1999년부터 지역의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섯 분의 충남도지사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심대평 지사는 진심으로 금산을 위했다. 관용차 뒤에 항상 금산인삼주를 싣고 다녔고, 회합이 있을 때마다 소개하는 금산인삼주 최고의 홍보대사였다. 이완구 지사는 금산과 학연도 있다고 하셨고, 당신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중에 홍주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금산에 묻힌 <칠백 의사> 중 한 분이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안희정 지사도 당신 고향 논산과 함께 금산의 발전을 위해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한 분이다. 양승조 지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금산을 방문하면서 지역 현안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김태흠 지사는 ‘금산이 소외되었다’는 지역민의 서운한 감정을 달래주었고, 박범인 금산군수가 지역 발전을 위해 요청하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훌륭한 충남도지사들이 오랫동안 금산에 애정을 갖고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었지만 지난 30년간 금산의 인구는 반토막 났다. 인구 5만을 지키기 위해 박범인 군수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2, 3대 금산 민선군수를 역임한 김행기 군수는 사석에서 나에게 ‘금산이 인삼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0년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후에 금산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행기 군수의 예언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이대로 세월이 흐른다면 다시 30년이 흐른 뒤의 금산 인구는 또 반토막이 나면서 인구 2만 5천의 초라한 농촌이 될 것이다. 다시 30년 지나면 <금산군>이 아닌 <금산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완구 지사는 ‘북쪽(천안/아산)에 가면 입이 벌어지는데, 남쪽만 내려오면 머리가 아프다. 무엇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니...’ 라고 했다.

일찍 변하는 세상을 예상하지 못하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살았던 금산의 지도자들과 주민들 책임이 가장 클 것이고 금산은 그 대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뜨거워져 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로 살아야 할 것인가? 방법은 없을까?

요즘 정치권에서 이슈로 떠오른 메가시티에 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전도 세종시로 인구를 빼앗기면서 150만 인구가 무너졌다. 게다가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도하려 해도 부지 마련이 어렵다고 들었다. 금산은 대전보다 면적이 더 넓다. 인구는 대전의 1/30이다.

1995년에 대전과 광주를 제외한 광역시들이 농촌 지역을 하나씩 품었다. 인천은 두 개를 품었다.

30년이 거의 지난 지금, 그 동네를 보자. 인천의 강화와 옹진은 인구가 줄지는 않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섬이라는 지역적 한계가 있고, 인천은 이 지역을 이용하지 않은 것 같다.

대구시 달성군은 인구가 7만에서 17만으로 늘었다. 달성군 구지면은 면적의 거의 반이 국가산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구시가 계획한 프로젝트를 면적 넓은 달성군에 몰아준 덕분이다.

부산시 기장군은 멸치와 미역밖에 없던 어촌 마을이었지만 관광도시 부산이 새로운 인프라를 모두 기장으로 유치했다. 아난티를 비롯한 휴양시설, 관광단지, 과학관, 롯데월드 등이 기장으로 들어오면서 어촌 마을 기장도 천지개벽했다.

울산시 울주군은 각종 교육시설을 비롯한 많은 시설들이 입주하면서 5개 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0개 읍면 중 면 5개, 읍 5개인 동네가 울주군이다. 금산이 가야 할 길도 달성/기장/울주의 방향이라야 한다.

대전에서도 대덕연구단지를 확장해서 제2연구단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항공우주단지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금산이 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 충남 금산은 15개 시군 중 하나일 뿐이지만 대전시 금산은 대전의 유일한 농촌이 될 것이니 금산이 신선한 농산물의 주요 공급처가 될 수 있다.

KAIST를 비롯한 연구기관들이 인삼의 현대화를 위해 힘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고, 광역교통망도 쉽게 개설될 수 있다. 이렇게 대전과 금산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일부 금산 주민들이 걱정하는 혐오시설의 금산 유치는 문제없다고 들었다.

대전시 <금산구>라면 금산이 농촌지역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어려워지면서 불이익을 받을 공산이 크기에 이런 방식의 통합이라면 나부터 나서서 반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금산군>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방식으로의 통합이라면 이 길만이 <소멸 위험지역> 금산의 어두운 미래를 반전시키거나, 적어도 소멸을 뒤로 미룰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나는 믿는다.

금산이 행정구역 개편을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1963년에 금산의 선대 어른들이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행정구역을 변경해 달라고 청원하셨다. 당시 정계 유력자였던 여당의 길재호 공화당 사무총장과 옥계 유진산 총재라는 여야를 막론한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금산은 전북에서 충남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선대가 원한 것은 <전북>에서 <충남>으로의 변경이 아니라 <전주>에서 <대전>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주는 당시 길도 매우 험하고, 거리도 70km나 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대전은 거리도 30km이고, 비교적 접근성이 좋아 왕래가 잦기 때문이었다.

대전은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에 대전역이 생긴 이후로 서울, 부산, 일본, 만주 등의 대처(大處, 옛날 식 표현이다)로 금산이 뻗어나갈 관문이었고, 임영신 박사를 비롯한 금산의 위인들이 해외 유학을 떠나시던 통로였다.

지금까지도 대전은 금산과 가장 왕래가 많은 지역이니 행정구역까지 통합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대전에 거주하는 금산 출신 인사들이 13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이분들과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금산은 더 큰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금산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대전시 <금산군>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