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금산인삼, 걱정됩니다.

작성일 : 2023-02-21 13:31

<삼남제약 김호택 회장>

 

며칠 전에 국회에서 회의가 있어 서울 갔다가 국회란 곳이 국회의원들만 싸우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흔들어대는 수많은 갈등들이 모두 국회 앞에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요즘 의료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간호법 개정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린 수많은 플래카드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보건의료노조가 간호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화물차 노조와의 갈등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안전 운임제를 촉구하는 글도 보였다.

 

정부에서 건강보험료에 지원해 주던 10조 원의 일몰에 대해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도 많이 붙어 있었고, 대학강사의 처우 개선과 산업은행 지방 이전을 반대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현금수송 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다짐하는 글과 금융 공공성을 확립하라는 금융산업노조의 주장에 업역 개방을 폐지하라는 지역 전문 건설협회의 글도 보였다.

 

종교적인 주제도 많았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플래카드와 ‘태아도 생명이니 낙태 반대’, 거기에 중국의 파룬궁 탄압을 호소하는 문구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어느 맥주회사를 비난하는 내용과 국회 정치 개혁을 촉구하는 무예단체 연합회의 글도 있었고, 뜬금없이 검찰과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문구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다.

 

국회 내부에도 플래카드가 하나 있었다. ‘노란봉투법 제정하라’는 글이 국회 본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흥미로운 마음으로 각종 플래카드의 주장을 적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양승조 전 충남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 국회의원들만 다툴까요? 우리나라에서 갈등으로 소모되는 손해를 금전으로 환산하니 최소 82조 원이라고 하고, 제일 많이 보는 견해는 200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이루어지는 고소 건만 40만 건, 고발까지 합치면 84만 건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플래카드를 보고 난 후라 그 말이 더욱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국회 앞에 많이 보던 빨간 버스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금산 버스들이었다. 강상묵 인삼조합장과 남준수 인삼약초과장, 그리고 최영준 금산진악신문 편집국장을 비롯한 금산에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그라져 가는 인삼 농가들의 생존을 호소하는 집회가 열리려는 참이었다. 금산에서만 300여 명의 농민들이 상경했고, 금산뿐만 아니라 충남, 세종, 전북, 풍기, 충북 등지에서 23대의 버스로 천여 명의 농민들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참담한 현실을 알리고자 모였다고 했다.

 

자칭 농민 가수라는 어느 여성이 우렁찬 목소리로 양희은 씨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노래로 분위기를 잡았고, <인삼농업 대책 위원회>의 이홍철 위원장은 “생사 기로에 놓인 우리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이홍철 위원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인삼 농사는 7-8년 공을 들여야 하는 농사이기에 노력과 함께 천운도 있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잘 지으면 뭐 하는가. 낮은 수익구조 때문에 고사 위기에 처해 있지만 정부는 수수방관 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인삼산업법 등으로 규제만 할 뿐 지원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정부에 호소도 하고, 인삼을 불태우는 시위까지 했지만 정부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다른 작물들은 모두 수급 조절을 위한 자료 제공과 자금 지원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째서 인삼만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가?”

 

그리고 5가지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1) 정부는 생존권을 보장하라

(2) 인삼을 관장하는 정부 내 독립기관 설치하라

(3) 인삼 비축자금 제도를 마련하라

(4) 최저보상제 실시하라

(5) 인삼산업법, 약사법 개정하라

 

약속 시각이 촉박해 이후의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안타까운 인삼업계의 현실과 농민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이홍철 위원장의 주장대로 정부는 금산인삼을 돕기 보다는 과거 전매청, 지금 담배인삼공사로 인삼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많은 규제를 해왔다.

 

내 부친이신 김순기 회장님의 유품 중에 1960년대부터 인삼 탄압과 그에 저항하는 금산 인삼업계 인사들의 수많은 탄원과 하소연의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 기록들을 되짚어 보면 정부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인삼 제품의 포장마저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삼 농민들의 이 하소연과 절규가 받아들여져 금산이 다시 인삼으로 우뚝 서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